코딩이 사라진 게 아니다, 코딩의 독점이 끝났다
연재 「발주자」 — 코딩 못 하는 교사가 교실 도구를 만들며 배운, 시키는 사람의 조건. 24편 중 1편.

밤 열한 시였다.
알림장을 다 쓰고 나서, 내일 쓸 구구단 학습지를 인쇄하려다 말았다. 같은 종이를 몇 년째 뽑고 있었다. 8단에서 막히는 아이와 2단도 아직인 아이가 같은 장을 받는다는 게 늘 마음에 걸렸는데, 그렇다고 스무 명 몫을 따로 만들 수는 없었다.
그때 이용권 하나가 생각났다.
스마트폰을 바꾸면서 딸려 온 것이었다. 무슨 이용권인지도 모르고 받아 뒀다. 대리점 직원이 "요즘 이거 다들 쓰세요" 하고 넘긴 종이 한 장. 서랍에 두 달을 넣어 뒀다가, 그날 밤에 꺼냈다.
눌러 보니 채팅창이 하나 떴다. 깜빡이는 커서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이렇게 썼다.
구구단 문제를 하나씩 보여 주고, 아이가 답을 맞히면 다음 문제로 넘어가는 웹페이지를 만들어 줘. 틀리면 정답을 알려 주고.
코딩 용어는 한 글자도 안 썼다. 쓸 줄 몰랐으니까.
화면에 글자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무슨 말인지 모를 기호가 한참 지나가더니 멈췄다. 시키는 대로 파일 하나를 만들어 저장하고, 더블클릭했다.
브라우저가 열렸다. 검은 글씨로 7 × 8 = ? 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래 칸에 56을 넣었다. 화면이 바뀌면서 다음 문제가 떴다.
어, 이게 되네.
그 다섯 글자가 그날 밤 내 머릿속에 든 전부였다. 대단한 깨달음 같은 건 없었다. 정확히 그 말을 소리 내서 했던 것 같다. 새벽 한 시가 넘어서까지 문제를 스무 개쯤 풀었다. 내가 낸 문제를, 내가.

솔직히 말하면 그 페이지는 형편없었다.
글자가 화면 밖으로 튀어 나갔다. 새로고침하면 처음으로 돌아갔다. 폰으로 열어 보니 입력 칸이 손가락보다 작아서 누를 수가 없었다. 다음 날 교실에 가져갈 수준이 전혀 아니었고, 실제로 가져가지 않았다.
그래도 무언가가 그날 밤에 끝났다. 뭐가 끝났는지는 며칠 지나서야 말로 정리가 됐는데, 그때 내가 찾은 표현이 지금까지도 제일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그 전까지 십몇 해
이 얘기를 하려면 그 전의 십몇 해를 먼저 꺼내야 한다.
십 년 넘게 나는 우리 반에서 학급경제를 운영했다. 손으로. 종이돈을 만들고, 종이 통장에 적고, 세금을 계산했다.
중간에 도구가 없었던 건 아니다. 어떤 선생님이 만든 학급경제 앱이 있어서 한동안 그걸 썼다. 좋은 앱이었다. 그런데 내가 원하던 방식과 다른 자리가 몇 군데 있었고, 그때 내가 한 일은 그 자리를 내가 맞추는 것이었다. 앱이 안 해 주는 건 내가 손으로 했고, 앱이 정한 방식이 있으면 우리 반이 거기 맞췄다.
그게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도구는 원래 그렇게 쓰는 것이니까. 만드는 쪽에는 전국의 교실이 있고 우리 반은 그중 하나다. 내가 그 앱을 만든 사람이었어도 나 한 명을 위해 고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보통 이런 얘기는 「그래서 포기하게 된다」로 이어진다. 원하는 게 안 오는 일이 반복되면 원하는 것 자체를 그만두게 된다고.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내 경우는 아니었다.
나는 그만두지 않았다. 손으로 했다.
십 년 넘게 우리 반에서 학급경제를 굴렸다. 아이들에게 직업이 있고 월급이 있고, 세금을 내고, 뭔가를 사고팔았다. 그걸 전부 사람 손으로 했다. 도구가 있어서 한 게 아니라 도구가 없는 채로 한 것이다. 매년 다시 시작했고, 매년 같은 자리에서 힘들었다.
그러니까 그날 밤 구구단 페이지가 떴을 때 내가 놀란 건 「이런 걸 원할 수도 있구나」가 아니었다. 원하는 건 이미 십 년째 또렷했다. 놀란 건 다른 쪽이다.
손으로 하던 걸 기계한테 시킬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순간부터 내 머릿속에 떠오른 건 구구단이 아니었다. 십 년 동안 손으로 굴려 온 그 학급경제였다.
사라진 것은 코딩이 아니다
「이제 개발자가 필요 없어진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그날 밤에 만들어진 코드가 형편없었다는 걸 내가 제일 잘 안다. 지금도 나는 그 코드를 읽지 못한다.
끝난 건 다른 쪽이다.
지금까지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코드를 쓸 줄 아는 사람이었다. 능력의 문제라기보다 자격에 가까웠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문법을 모르면 문 앞에서 돌아서야 했다. 나는 열몇 해 동안 그 문 앞을 지나다녔다.
그 문에 달린 자물쇠가 풀렸다.
문 안쪽 세계가 쉬워진 게 아니다. 여전히 어렵고, 여전히 엉망으로 나오고, 여전히 고쳐야 한다. 다만 누가 들어갈 수 있는가가 바뀌었다. 능력의 독점이 끝나면 다음 질문은 하나로 좁혀진다.
이제 누가 시킬 수 있는가.
이건 나만의 착각인가
당연히 의심스러울 것이다. 나도 의심했다. 그래서 이 분야 사람들이 실제로 뭐라고 답하는지 찾아봤다.
해마다 수만 명이 답하는 개발자 설문이 있다. 2025년 조사에서 응답자의 84퍼센트가 이미 AI 도구를 쓰고 있거나 쓸 계획이라고 답했다.1
숫자보다 재미있는 건 그다음 항목이었다. 같은 설문에서 개발자들이 꼽은 가장 큰 불만은 "거의 맞는데 딱 맞지는 않은" 결과물이었다. 개발자 셋 중 둘이 그걸 골랐다.1
읽는 순간 웃었다. 내 첫 페이지가 정확히 그랬으니까. 문제는 나왔는데 폰에서 버튼이 안 눌렸다. 거의 맞는데, 딱 맞지는 않았다.
물론 그들의 일과 내 일이 같다는 뜻은 아니다. 그들이 다루는 규모와 책임은 내 학습지와 비교가 안 된다. 다만 한 가지 동작은 겹친다. 시키고, 받고, 어긋난 데를 찾아 다시 시키는 것. 이 시리즈에서 나는 그 동작을 하는 사람을 발주자라고 부를 것이다. 그 동작에서 그들이 나보다 훨씬 나은 건 «어긋난 데를 찾는 눈»이지 «자물쇠를 여는 열쇠»가 아니다. 열쇠는 이제 따로 필요 없으니까.
자물쇠는 지금도 문에 걸려 있다. 다만 잠겨 있지 않다. 밀면 열린다.
오해는 말자. 문이 열렸다는 건 안이 안전하다는 뜻이 아니다. 들어가 보면 어둡고, 바닥이 고르지 않고, 뭘 밟았는지 모른 채로 넘어진다. 나는 그 안에서 여러 번 넘어졌고 그 얘기를 10편에 몰아 두었다. 다만 넘어지는 건 들어간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지.
하나는 정직하게 말해 둬야겠다. 나 같은 비전공자가 지금 얼마나 많이 무언가를 만들어 내놓고 있는지, 믿을 만한 통계를 나는 찾지 못했다. 왜 못 찾았는지는 4편에서 따로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 시리즈에서 나는 남의 숫자로 당신을 설득하지 않겠다. 방금 인용한 설문처럼 원본을 열어 확인한 것만 쓰고, 그것도 배경으로만 쓴다. 앞에 세우는 건 내가 실제로 겪은 일 쪽이다.
왜 하필 지금인가
이 질문은 넘어갈 수가 없다. 컴퓨터로 뭘 만들라는 얘기는 30년째 있었다. 나는 30년 내내 안 했다.
이유는 하나다. 전에는 먼저 배워야 했다.
프로그래밍 학원 광고를 볼 때마다 계산이 섰다. 반년, 학원비, 저녁 시간. 그러고 나면 뭘 만들 수 있는데? 아마 계산기 정도. 내가 원한 건 계산기가 아니라 우리 반 8단 아이와 2단 아이가 다른 문제를 받는 학습지였다. 그 거리가 너무 멀어 보였다.
그 반년이 없어졌다.
지금 필요한 건 말이다. 무엇이 필요한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어떻게 동작해야 하는지 설명할 수 있으면 된다. 그런데 그건 교사가 매일 하는 일이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들에게 절차를 설명한다. 학년 초에 학급 규칙을 짠다. 안 되는 활동을 뜯어고친다.
그 계산에는 함정이 하나 더 있었다. 나는 «배우는 쪽»만 계산하고 «이미 가진 쪽»은 계산에 넣지 않았다.
내가 가진 건 이런 것이었다. 어느 아이가 어디서 막히는지, 그게 몇 명인지, 그 아이가 화면 앞에서 몇 초를 견디는지. 학원에서는 이걸 안 가르친다. 십몇 년치 교실에서만 나온다.
배워야 할 것과 이미 가진 것이 뒤바뀌어 있었던 셈이다.
십몇 년 동안 나는 코딩을 못 배운 게 아니라, 발주를 연습하고 있었다.

오늘 밤에 할 일
거창한 걸 시작하라는 말이 아니다. 나는 그날 밤에 아무 계획도 없었다.
당신 반에서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일 하나를 떠올려 보자. 매번 종이로 하는 것, 매번 이름을 부르는 것, 매번 표를 다시 그리는 것. 하나면 된다.
그걸 채팅창에 그냥 설명해 보라. 코딩 용어 없이. 아이한테 설명하듯이.
세 가지만 넣으면 된다. 무엇을 위한 것인지, 누가 쓰는지, 화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 내 첫 문장에도 그 세 가지가 들어 있었다. 구구단(무엇을), 아이가(누가), 맞히면 다음 문제로 넘어간다(무슨 일이). 그게 전부였다.
무료로 쓸 수 있는 도구가 지금도 있다. 나는 돈을 낸 적 없는 상태에서 저 페이지를 받았다. 그러니 「일단 얼마부터 내야 하나」는 오늘 밤의 고민거리가 아니다.
결과물은 아마 형편없을 것이다. 내 것도 그랬다. 그런데 그 형편없는 결과물이 화면에 뜨는 순간, 당신 머릿속에서도 다섯 글자가 지나갈 거라고 나는 꽤 확신한다.
어, 이게 되네.
그 다섯 글자에는 이상한 성질이 있다. 한 번 지나가고 나면 되돌릴 수가 없다. 다음 날부터 나는 학습지를 인쇄하면서 「이건 원래 이런 거야」라고 생각하지 못하게 됐다. 불편한 게 눈에 밟히기 시작했고, 그 뒤로 지금까지 계속 밟힌다.
그게 이 시리즈의 시작점이다. 다음 편에서는 그전까지 내가 십 년 넘게 뭘 하고 있었는지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한마디로 줄이면, 손으로 하고 있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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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Stack Overflow Developer Survey — AI. https://survey.stackoverflow.co/2025/ai (2026-09-05 확인)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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