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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주자2026-09-0716분

십 년 동안 나는 돈을 코팅했다

연재 「발주자」 — 코딩 못 하는 교사가 교실 도구를 만들며 배운, 시키는 사람의 조건. 24편 중 2편.

밤에 코팅기 앞에서 학급 화폐를 만드는 교사

3월 첫 주가 되면 나는 돈을 오렸다.

십 년 넘게 그랬다. 학급에서 경제 활동을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그 돈은 내가 만들었다. 컬러로 인쇄하고, 코팅하고, 한 장씩 잘랐다. 코팅을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안 하면 금방 걸레가 된다. 아이들 손을 거치는 종이는 어른이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닳는다.

세 단계뿐인데, 한 번 만들려면 저녁이 통째로 없어진다.

왜 이런 걸 하느냐고 묻는 사람이 가끔 있다.

아이들에게 돈을 가르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설명하는 것이고, 하나는 겪게 하는 것이다. 「근로 소득」이라는 낱말을 열 번 읽어 주는 것보다, 아이가 자기 손으로 번 돈을 세어 보는 편이 낫다고 나는 생각했다. 세금도 마찬가지다. 세금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것과, 자기 통장에서 세금이 빠져나간 걸 보고 잠깐 억울해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다.

그래서 시작했다. 그리고 3월에 한 번 만들고 끝나지 않는다는 게 곧바로 문제가 됐다.

교실에서 인플레이션을 배운 건 아이들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일을 하면 월급을 준다. 우유를 나르는 아이가 있고, 칠판을 맡은 아이가 있다. 우체부가 있고, 경찰이 있다. 학급의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이 있고, 세금을 맡는 국세청장이 있다. 은행 역할을 하는 아이도 한 명 뒀다.

써 놓고 보니 용돈 놀이처럼 들리지 않는다. 실제로도 아니었다. 법을 만드는 자리와 그 법을 어긴 걸 잡는 자리와 세금을 걷는 자리가 따로 있었으니, 규모만 작을 뿐 굴러가는 방식은 정부에 가까웠다. 여기까지는 계획대로다.

월급을 주면 교실에 돈이 늘어난다. 늘어난 돈은 알아서 사라지지 않는다. 걷어야 사라진다. 그래서 세금을 걷고, 물건값을 올리고, 학급 법을 어기면 범칙금을 매긴다. 그런데 걷는 속도가 주는 속도를 못 따라가면 어떻게 되나.

돈이 모자란다.

돈의 값이 떨어져서 같은 물건을 사는 데 더 많은 장수가 필요해진다. 그러면 유통되는 지폐가 부족해진다. 나는 다시 프린터를 켰다. 인쇄하고, 코팅하고, 잘랐다.

교실에서 인플레이션을 몸으로 배운 사람은 아이들이 아니라 나였다. 아이들은 물가가 올랐다는 걸 배웠고, 나는 물가가 오르면 교사가 밤에 코팅기 앞에 앉는다는 걸 배웠다.

물가를 올리는 일도 내 몫이었다. 무엇을 언제 얼마나 올릴지 정하는 사람이 나였다. 아이들은 값이 달라진 걸 금방 알아채고 왜 올랐느냐고 묻는다. 나는 돈이 너무 많아져서 그렇다고 설명했다.

그 설명은 사실이었다. 다만 그 사실을 만든 사람도 나였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다들 웃는다. 나도 웃으면서 한다. 그런데 저 문장을 십 년 동안 반복하면 그건 더 이상 농담이 아니다.

종이 통장이 있었다

종이 통장에 입출금을 손으로 적는 모습

돈만 있었던 게 아니다.

통장이 있었다. 종이 통장이다. 입금과 출금을 손으로 적었다. 예금이 있었고, 주식도 있었다.

주식의 값은 이렇게 정했다. 하루에 한 번, 반 전체와 내가 가위바위보를 한다. 나한테 이긴 사람이 몇 명인지, 진 사람이 몇 명인지, 비긴 사람이 몇 명인지를 센다. 그 숫자가 그날의 주가가 된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방법인데, 필요한 조건은 다 갖추고 있었다. 매일 달라지고, 아무도 결과를 미리 알 수 없고, 온 반이 동시에 지켜보는 가운데 정해진다. 컴퓨터가 없으니 난수를 만들 방법이 그것뿐이었다. 그래서 스물몇 개의 주먹으로 만들었다.

그러고 나면 그 값으로 오늘의 거래를 계산하는 사람이 또 나였다.

주가를 정하려고 반 전체가 동시에 가위바위보를 하는 장면

지금 우리 반 앱이 자동으로 처리하는 것들을, 그때는 전부 손으로 했다.

세금 계산은 매주 했다. 매주다. 한 반 몫의 소득을 확인하고 세율을 적용해서 얼마를 걷을지 뽑아내는 일을, 매주 한 번씩 십 년 동안 했다.

숫자는 자주 어긋났다. 어긋나는 이유는 늘 같았다. 거래는 교실에서 일어나고 기록은 내가 한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뭘 주고받으면 나는 그 자리에 없다. 나중에 와서 말해 주는 걸 받아 적는데, 여럿이 한꺼번에 몰리면 놓치는 게 생긴다.

오래도록 나는 그걸 내 성실함의 문제로 여겼다. 더 꼼꼼히 적으면 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장부 양식을 여러 번 손봤다.

지금 와서 보면 성실함으로 넘을 수 있는 종류의 한계가 아니었다. 거래는 교실 전체에서 동시에 일어나는데 그걸 적는 손은 하나뿐이었다.

그런데 왜 계속했나

교실에서 종이돈으로 거래하는 아이들

여기까지 읽으면 고생담처럼 들릴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재미있었다.

아이들이 첫 월급을 받고 뭘 살지 고민하는 얼굴, 지금 쓸지 모아 둘지 저울질하는 표정, 물가가 올랐다고 진지하게 따지러 오는 아이. 그런 장면은 학습지로는 안 나온다. 교과서에서 세금을 배운 아이와 자기 통장에서 세금이 빠지는 걸 본 아이는 다른 걸 배운다.

그래서 안 그만뒀다. 매년 3월이면 또 인쇄했다.

미리 말해 두자면, 나는 나중에 이 종이 시스템을 통째로 프로그램으로 옮기게 된다. 코딩은 여전히 못 하는 채로. 그 이야기는 이 시리즈에서 계속할 텐데, 그 전에 한 가지를 분명히 해 두고 싶다.

흔한 이야기는 이렇게 흘러간다. 불편한 게 있었지만 도구가 없어서 포기했고, 그러다 도구가 생겨 다시 시작했다는 식이다. 내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도구가 없으면 없는 대로, 십 년 넘게 손으로 했다.

그 십 년의 정체

한참 뒤에야 그게 무엇이었는지 알았다.

나는 요구사항 명세서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종이와 가위로.

무슨 뜻이냐면 이렇다. 학급 경제를 프로그램으로 만들려면 답해야 하는 질문이 수십 개다. 월급은 언제 지급되나. 아이가 아파서 결석하면 그 주 급여는. 물가는 누가 언제 올리나. 통장 잔액을 아이가 직접 보게 할 것인가, 교사만 볼 것인가. 국회의원이 만든 법이 어제 있던 법과 부딪히면 어느 쪽을 따르나. 경찰이 적발했는데 당사자가 아니라고 하면 누가 판단하나. 범칙금을 냈다가 뒤집히면 그 돈은 어디서 돌아오나.

이 질문들에 나는 답을 갖고 있었다. 십 년 동안 그걸 하나씩 정하면서 살았기 때문이다. 어떤 답은 처음 정한 대로 갔고, 어떤 답은 한 해를 굴려 보고 나서 바꿨다. 굴려 보기 전에는 무엇을 바꿔야 할지도 몰랐다.

여기에 답이 없으면 프로그램은 만들어지긴 하는데 교실에서 오래 못 간다. 화면이 아무리 멀쩡해도, 정해 놓지 않은 상황이 한 번 오면 그 자리에서 멈춘다. 그리고 교실에서는 정해 놓지 않은 상황이 매주 온다.

이건 코딩 지식이 아니다. 적어도 나는 컴퓨터 앞에서 배운 게 아니었다.

그래서 제일 어려운 것부터 시작했다

나중에 내가 처음으로 제대로 만들려고 한 프로그램이 바로 이 학급 경제 앱이었다.

무모한 순서였다. 돈이 오가고, 잔액이 맞아야 하고, 여러 사람이 동시에 쓰고, 하나가 틀리면 아이들이 바로 안다. 프로그램을 처음 만드는 사람이 고를 만한 대상이 전혀 아니다.

보통은 이렇게 조언한다. 쉬운 것부터 하세요.

나는 반대로 했다. 그리고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실력이 아니었다. 십 년 치 명세서가 이미 내 손에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는, 만들 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보다 클 때가 있다.

그 과정이 순탄했느냐 하면 전혀 아니다. 보름을 매달렸다가 절망한 적도 있다. 그 얘기는 뒤에서 제대로 하겠다.

소리가 나지 않는 손해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려고 한다.

십 년 동안 나는 저 일을 「원래 그런 것」으로 여겼다. 학급 경제는 원래 손이 많이 가는 활동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한참 뒤에 알았다. 손이 많이 가게 만든 건 학급 경제라는 활동이 아니다. 그걸 종이와 공책으로 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손해에는 소리가 안 난다.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는다. 회의 안건으로 오르지 않고, 학년말 평가서에 「올해는 종이돈을 자르고 세금을 계산하느라 저녁을 몇 번 썼다」고 적히지도 않는다. 그래서 몇 년이 지나도 아무도 그것을 문제라고 부르지 않는다.

소리가 나지 않는 손해가 제일 오래간다.

오늘 할 일

만들라는 말이 아니다. 아직 아니다.

이번 주에 당신 손이 반복한 일을 적어 보자. 매주 같은 표를 다시 그리는 것, 매번 같은 숫자를 옮겨 적는 것, 매번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는 것.

적어 놓고 보면 두 종류가 섞여 있을 것이다. 정말로 사람이 해야 하는 일과, 도구가 없어서 손이 하는 일.

둘을 가르는 기준을 나는 이렇게 잡는다. 그 일의 규칙을 말로 적을 수 있는가.

아이의 얼굴을 보고 오늘 컨디션을 알아채는 일은 규칙으로 못 적는다. 그건 사람이 해야 한다. 그런데 소득에 세율을 곱하는 일은 한 줄로 적힌다. 나는 십 년 동안 그 둘을 같은 상자에 넣어 두고 「교사의 일」이라고 불렀다.

규칙으로 적히는 일이라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라 아직 시키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하나 더. 그 목록은 언젠가 쓸모가 있다. 나중에 무언가를 만들게 되는 날, 당신은 그 목록에 적힌 것을 만들게 된다. 손이 십 년 동안 기억한 것을 머리는 잘 못 지어낸다.

내 목록의 맨 위에는 십 년째 가위가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게 하나 있다. 그렇게 오래 손으로 버텼으면서, 나는 그걸 고쳐 볼 생각을 아주 오랫동안 하지 않았다. 손으로는 그토록 부지런했으면서 만드는 쪽으로는 내내 구경만 했다. 다음 편은 그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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