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리즈는 돈 얘기를 하지 않는다
연재 「발주자」 — 코딩 못 하는 교사가 교실 도구를 만들며 배운, 시키는 사람의 조건. 24편 중 4편.

예전에 쓴 원고 8장에 이런 문장이 있다.
솔직히 말하면, 이것들은 내가 팔아서 돈을 번 물건은 아니다.
그때 나는 이 문장을 8장 한복판에 슬쩍 넣어 두고, 바로 다음 줄에서 이렇게 이어 갔다. 그래도 이 과정에서 안목이 길러졌고, 같은 눈으로 보면 돈이 되는 버전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몇 장 뒤에는 그걸 돈으로 바꾸는 방법을 따로 실었다.
그러니까 그때 나는 판 적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지나갔다. 부끄러웠으니까.
이번에는 그 문장을 4편으로 끌어올려 앞에 세운다. 그리고 여기서 멈춘다. 뒤에 이어 붙일 말이 나한테는 없다. 이 시리즈에서 제일 중요한 문장 중 하나라고 생각해서다.
나는 판 적이 없다
정확히 말해 두겠다.
내가 만든 것들 중에 돈을 받고 판 것은 하나도 없다. 광고도, 결제 화면도 붙인 적이 없다. 우리 교실에서 쓰고, 주소를 아는 사람이 들어와 쓴다. 그게 전부다.
그러니 이 시리즈는 「AI로 월 얼마 버는 법」을 다룰 수가 없다. 다루면 거짓말이다. 겸손을 부리는 게 아니고, 확인해 보면 그렇다.
이 얘기를 먼저 하는 이유는 이런 글의 표지에 대개 그 약속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부업이니 수익화니 하는 말들. 서점에 가면 그 말들이 한 칸을 통째로 채우고 있다. 그런 책을 탓하려는 게 아니다. 실제로 판 사람이 판 얘기를 쓰면 그건 정직한 책이다. 나한테는 그 자격이 없을 뿐이다.
덧붙이면 나는 그 칸의 책도, 만드는 법을 알려 주는 책도 사 본 적이 없다. 이걸 책으로 공부한 적이 없다는 뜻이다. 나는 화면 반대편에 대고 물어 가며 배웠고, 가끔 누가 올린 방법을 보고 하나씩 얹었다. 그러니 이 시리즈는 공부한 사람의 정리가 아니라 써 본 사람의 기록에 가깝다.
한 가지 더 밝히자면, 팔 계획이 없어서 안 판 것도 아니다. 몇 번은 생각했다. 결제를 붙이려면 개인정보를 받아야 하고, 아이들이 쓰는 물건에 그걸 붙이는 순간 내가 책임져야 할 것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 선을 넘을 이유를 아직 못 찾았다. 이건 이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결정이라 16편에서 따로 다룬다.
판 적 없는 사람이 수익을 말하면
한번 상상해 보자.
내가 이 자리에서 「AI로 앱을 만들면 이렇게 수익이 납니다」라고 쓴다고 치자. 나는 그 문장의 근거를 어디서 가져올까. 내 통장은 아니다. 그럼 남의 사례를 가져와야 한다. 어디선가 본 성공 사례, 유튜브에서 들은 숫자, 기사에 나온 비율.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나는 최근에 아주 선명하게 봤다.
이 시리즈를 준비하면서 「비개발자가 얼마나 많이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있는가」를 알아보게 했다. 내가 직접 검색한 게 아니라 시켰다. 그게 이 시리즈에서 내가 하는 일이다.
받아 온 건 그럴듯한 비율 하나였다. 국내 글에도 나오고 외국 글에도 나오고, 다들 같은 설문을 출처로 대고 있었으며, 숫자가 워낙 깔끔해서 나는 그걸 그대로 쓰고 싶었다.
그래서 한 가지를 더 시켰다. 그 설문 원문을 열어서 그 항목이 실제로 있는지 확인해 보라고.
없었다.
애초에 그 설문은 개발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라 비개발자 비율을 낼 수 있는 조사가 아니었다. 게다가 그 숫자를 옮겨 적은 글들끼리도 값이 서로 달랐다. 같은 설문을 인용한다면서.
이 대목을 나는 좀 오래 들여다봤다. 처음 받아 온 답이 틀렸던 건 누가 거짓말을 하려 해서가 아니라 세상에 실제로 그렇게 적혀 있었기 때문인데, 그 말은 잘못이 인터넷에 쌓인 복사본에 있고 그걸 그대로 가져온 건 도구이며, 그 둘을 확인 없이 실었다면 그때부터는 내 잘못이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배운 게 하나 있다. 검색 첫 페이지의 만장일치는 사실을 증명하지 않는다. 다들 같은 글을 베꼈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리고 하나 더 배웠다. 시키는 사람은 받은 답을 한 번 되돌려 봐야 한다. 이 얘기는 17편에서 제대로 하겠다.
수익 이야기는 특히 그렇게 된다. 아무도 자기 통장을 열지 않고, 다들 남의 통장을 인용한다. 그렇게 몇 번 옮겨 다니면 원본이 사라진다. 나는 그 대열에 끼고 싶지 않다. 한 번 끼면 빠져나올 방법이 없다. 내 글을 읽고 누가 또 옮겨 적을 테니까.
여기서 잠깐 앞뒤가 맞는지 보자. 나는 방금 남의 숫자를 못 믿겠다고 했다. 그러면 내 얘기는 왜 믿어야 하나?
절반은 안 믿어도 된다. 주소를 적어 둘 테니 화면이 뜨는지는 눌러 보면 그 자리에서 확인된다. 다만 나머지 절반은 여전히 내 말에 기대야 하는데, 그 화면을 아이들이 실제로 얼마나 여는지는 나만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시리즈를 읽는 동안 확인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의 경계를 나는 그때마다 표시해 두겠다.
그럼 무엇을 증거로 내는가

돈이 아니면 무엇으로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이걸 오래 생각했다.
답은 쓰임이었다.
내가 내놓을 수 있는 건 이런 것들이다. 아이들이 아침에 들어와서 여는 화면이 있다. 깃허브로 올린 주소가 학교 망에서 막히는 바람에 자리를 옮긴 적이 있다. 어떤 것은 만든 뒤로 계속 쓰이고 있고, 어떤 것은 잠깐 쓰이다 만다.
잠깐 쓰이다 만 것도 있다고 쓴 건 일부러다. 초기에 만든 것 중에 관상을 봐 준다는 장난 같은 게 있었다. 재미있어했다. 그런데 한 번 볼 때마다 나한테 비용이 나갔고, 그걸 계속 감당할 이유를 못 찾았다. 그래서 흥밋거리로 지나갔다. 그 얘기까지 같이 해야 이 목록이 증거가 된다.
이건 통장 잔고보다 초라해 보인다. 나도 안다.
그런데 이쪽에는 다른 성질이 하나 있다. 일부는 확인이 된다. 주소를 열면 지금도 화면이 뜨고, 죽었으면 죽은 게 보인다. 수익 숫자는 내가 부풀려도 당신이 확인할 방법이 없지만, 주소는 당신이 직접 눌러 볼 수 있다.
이 시리즈에 나오는 도구의 주소를 나는 전부 적어 둘 생각이다. 자랑이 아니라 확인용이다. 눌러 보라고 적는다.
다만 두 개는 주소가 없다. 하나는 학급 전용이라 링크를 열지 않고, 하나는 회원가입을 거쳐야 들어간다. 그 둘은 「주소가 없다」고 그때마다 밝히겠다. 없는 걸 있는 것처럼 뭉개면 나머지 주소의 신용까지 같이 떨어진다.
돈이 안 든다는 뜻은 아니다
오해가 하나 생길 것 같아서 미리 막아 두겠다.
「돈 얘기를 안 한다」는 건 수익을 약속하지 않는다는 뜻이지, 비용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나는 처음 한동안 무료로 썼고, 나중에는 돈을 냈다. 언제 처음 결제했는지, 무엇에 얼마가 드는지는 11편에서 따로 다루겠다. 다만 그 편에서도 내 영수증은 공개하지 않는다. 공개된 요금표만 쓴다. 개인 지출을 근거로 남을 설득하는 건 이 시리즈가 하지 않기로 한 일에 들어간다.
여기서 미리 한 가지만 말해 두면, 시작하는 데는 돈이 안 들었다. 폰을 바꾸면서 딸려 온 이용권으로 만든 것이라 내 첫 페이지는 결제보다 먼저 나왔다.
수익 약속이 독자에게 하는 일
수익을 앞세운 글에는 부작용이 하나 있다. 읽는 사람의 기준선을 남의 통장에 맞춰 버린다.
월 얼마를 벌었다는 글을 읽고 나면, 내가 주말에 만든 작은 것 하나는 초라해진다. 그게 우리 반에서는 잘 돌아가는데도 그렇다. 비교 대상이 옆 교실이 아니라 인터넷의 성공담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시작을 안 하게 된다. 「어차피 그 정도는 못 만드는데」로 끝난다. 3편에서 말한 구경이 여기서 한 번 더 길어진다.
나는 이 시리즈를 읽는 동안 당신의 기준선이 교실 쪽에 남아 있기를 바란다. 잘 만들었는지는 아이들이 여는지로 판단하면 된다. 그건 당신이 직접 볼 수 있고, 남의 숫자가 필요 없다.
그럼 왜 하는가
수익이 목적이 아니면 왜 저녁을 쓰느냐는 질문이 남는다.
나는 이렇게 답한다. 삼월 첫 주에 가위를 안 들어도 되게 되었다. 세금을 매주 손으로 계산하지 않게 되었다. 8단에서 막히는 아이와 2단이 아직인 아이가 같은 화면 앞에서 서로 다른 문제를 받게 되었다. 그 화면들이 언제 어떻게 생겼는지는 2부에서 하나씩 다룬다.
같은 기간에 안 된 것도 있다. 잠깐 쓰이다 만 것이 있고, 비용이 계속 나가서 접은 것도 있다. 앞의 세 줄과 이 두 줄은 같은 저녁에서 나왔다.
이건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다.
환산할 필요도 없다. 내 일이 편해졌고, 내 교실이 내가 생각한 모양에 조금 가까워졌다. 그거면 저녁을 쓸 이유로 충분했다.
이 시리즈가 당신에게 약속할 수 있는 것도 딱 거기까지다. 당신이 부자가 되는 방법은 나한테 없다. 다만 당신이 매주 손으로 반복하는 그 일 하나를 없애는 방법은 있다. 그건 내가 실제로 여러 번 해 봤다.
이 약속의 부작용
이 약속에 값이 붙는다는 건 나도 안다.
서점에서든 블로그에서든 「수익」이 붙은 제목 쪽으로 손이 가는 걸 나부터 여러 번 겪었다. 그러니 이 시리즈가 덜 읽힐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 제목을 달면 3편쯤에서 들통난다. 내가 판 적이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반대쪽을 택했다. 없는 걸 없다고 먼저 말하고 시작한다. 그러면 최소한 이 시리즈가 무엇을 근거로 삼는지는 분명해진다. 적은 대신 어디까지가 내 경험인지 표시된 쪽.
오늘 할 일
당신이 어떤 글을 읽고 마음이 움직였을 때, 한 가지만 확인해 보는 습관을 들여 보자.
이 사람은 이걸 실제로 해 봤는가.
해 본 사람의 글에는 대개 실패가 어딘가에 남아 있다. 이게 확실한 판별법은 아니다. 겪고도 안 쓰는 사람이 있고, 안 겪고도 그럴듯하게 지어 쓰는 사람이 있다. 다만 실패가 아예 안 나오는 성공담을 만나면, 나는 한 번 더 묻고 읽는다. 이 사람은 어디서 넘어졌을까.
같은 잣대를 이 시리즈에도 대 보라. 나는 각 편에 안 된 것을 한 줄씩 같이 쓰려고 한다. 첫 페이지가 폰에서 안 눌린 것처럼. 그 한 줄들이 왜 생겼는지, 내가 무엇을 잘못 시켰는지는 10편에서 한꺼번에 파헤친다.
잣대를 대는 김에 이 편에도 대 보자. 이 편에서 나는 남의 조사를 근거로 든 적이 없다. 유일하게 나온 남의 숫자는 «내가 쓰려다 만 숫자»였고, 그것도 못 쓰겠다는 얘기를 하려고 꺼냈다. 나머지는 전부 내 교실에서 나왔다. 그래서 이 시리즈는 좁다. 좁은 대신 전부 겪은 것이다.
여기까지가 1부다. 왜 지금인지, 그동안 무엇이 우리를 멈춰 세웠는지, 이 글이 무엇을 약속하지 않는지를 이야기했다.
다음 편부터는 다른 질문으로 넘어간다. 그래서 발주자는 정확히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3편에서 「시킨 사람」이라고만 해 둔 그 자리를, 이제 제대로 들여다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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